My Precious Spoons

Interview

Editor. Jiyoung Ha
Photographer. Yeseul Jun

‘한국 문화 코디네이터’, ‘한국 요리 전문가’, ‘스푼 컬렉터’라는 다양한 직함을 가지고 계시죠. 현재 하고 계신 일들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려요.

대학 시절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조선왕조 궁중음식 기능보유자’셨던 고 황혜성 선생님에게 요리를 처음 배웠어요. 연구원으로 함께했고, 이후 <마당과 멋>이라는 잡지를 만들었던 마당출판사의 요리책 편집부를 거쳐 1980년대 초부터 일본 NHK 등 방송과 잡지에서 한국의 요리와 문화를 소개하기 시작했어요. 요리연구가로 일본 여러 갤러리에서 한국의 식문화와 공예를 소개하는 요리회를 다수 열었고, 그 이후부터 한국 공예가를 해외 갤러리 및 수집가와 이어주고 전시를 기획하거나 협업을 하고 있어요.

본래 요리 전문가라는 직업을 갖고 계셨는데 어떤 계기로 숟가락을 수집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수집이라는 표현은 좀 거창한 것 같기도 해요. 제가 본래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에 순전히 필요에 의해서 구매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게 되었어요. 주로 은숟가락과 놋숟가락으로, 한국 작가들의 아름다운 숟가락을 소장하고 있죠. 익히 알던 모양의 숟가락은 이미 많이 가지고 있기도 하고, 온전히 나의 필요에 따라 새롭게 제작을 의뢰하는 경우도 많아요. 특히 근래에는 심현석 선생님한테 제작을 많이 의뢰하고 있는데, 지금 제가 들고 있는 이 숟가락도 일본에서 행사할 때 화채 뜨는 용도로 쓸 수 있도록 자루를 길게 만들어달라고 의뢰한 거예요. 이따금씩 숟가락을 구매할 때는 삼청동의 아원공방과 답십리 고미술상가에서 많은 것을 구입하고 있고요.

한국 숟가락에는 예부터 ‘장수’와 ‘복’을 상징하는 문양을 많이 새기곤 했어요. 인간의 윤택한 삶을 기원하는 정신이 숟가락에 들어가게 된 이유는 뭘까요?

숟가락은 매일 쓰니까 그렇지 않을까요. 옛날에 사람이 죽었다는 말을 ‘숟가락을 놓았다’고 했잖아요. 숟가락으로 밥을 먹으며 생명을 유지하기 때문에 숟가락에 기원을 불어넣는 것이죠. 옛날에도 복 복이나 기쁠 희, 목숨 수 자를 새겨 넣었잖아요. 복이 많고 건강히 오래 사는 것이 인간의 큰 바람이었으니까요.

선생님의 일상에서 사용하는 숟가락은 어떤 제품인가요?

제가 제작한 ‘오리지널’ 제품의 작은 사이즈의 숟가락을 사용해요. 제가 입이 크지 않아서 큰 숟가락은 부담스럽더라고요. 은수저는 하나 사면 평생 쓸 수 있으니 다들 투자를 해서 은수저만큼은 하나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 싶어요. ‘은수저로 태어나지 못했지만, 은수저를 써보기라도 해보자’라는 마음으로.(웃음)

오랜 시간 우리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숟가락을 작품이자 도구로써 수집해오신 선생님께 숟가락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숟가락을 수집한다는 건 어디까지나 매일 사용하는 생활의 일부분을 채운다는 의미예요. 그렇다고 제가 엄청나게 다양한 숟가락을 수집하는 것도 아니고요. 우리는 매일같이 밥을 먹기 때문에 어쩌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겠죠.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문화 코디네이터와 요리연구가의 삶을 살면서 생활 속 반려자가 될 것 같아요.

할머니의 세월만큼 매일같이 몸 곁에서 쓰이다가 뭉툭해진 숟가락이야말로 부엌에서 참으로 쓸모 있는 물건입니다. 박 속을 파내고, 감자며 생강 껍질을 벗겨내는 필러로도 사용합니다. 자루가 부러진 숟가락은 아주 보물입니다. 자루 끝으로 싹이나 벌레 먹은 데를 도려냅니다. 끓는 찌개 뚝배기에 채소를 적당히 뚝뚝 끊어 넣을 때도 칼 대신 편합니다. (중략) 맛을 내는 최고의 조리 도구가 어머니의 손이라면, 두 번째는 숟가락인가 싶습니다. 한국 어머니에게 못 쓰는 숟가락이란 없습니다.
- <숟가락> 중에서

인터뷰 전문은 <매거진 툴즈> ‘숟가락’ 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