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와 예의

Interview

Editor. Danbee Bae
Photographer. Yeseul Jun

6층에 자리한 키친 스튜디오 ‘노영희의 철든부엌’과 모던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품 서울’, 1층의 그릇 가게 ‘노영희의 그릇’, 그리고 한식 카페까지. 모두 삼성동 한 건물에 자리하고 있다. 각각 어떤 공간인가?

품 서울을 처음 시작한 곳은 남산이었다. 꼬박 만 12년을 운영하다가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2020년 12월 말에 키친 스튜디오인 노영희의 철든부엌과 합쳤다. 소규모 예약제로 운영하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품 서울의 규모를 조금 줄여 철든부엌으로 들어간 거다. 철든부엌에서는 주로 광고 촬영과 쿠킹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다. 지금은 거의 안 하지만 잡지 촬영도 했고. 노영희의 그릇은 시작한 지 5년 정도 됐다. 요리를 업으로 하기 전에 먼저 시작한 푸드 스타일링 일을 하면서 종종 그릇 가게에서 그릇을 사서 쓰다가 나도 한번 해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릇을 만드는 작가들과 요리 공부를 하면서 음식을 이해하고 그와 어울리는 그릇 작업을 의뢰한 거다. 내가 오랜 시간 써왔던 그릇들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그 바로 옆에 있는 한식 카페는 오래전부터 하고 싶던 것 중 하나였는데, 올해 초에 이뤘다. 한식을 바탕으로 한 후식을 그에 맞는 그릇에 담아내는 형태의 찻집이다.

누군가의 일생은 단 하나의 업이나 일로 설명되기도 하지만, 노영희 선생의 경우에는 단계적으로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월간지 에디터로 시작해 푸드 스타일리스트, 요리연구가와 셰프까지. 그 변화에 어떤 계기가 있었나?

<신부>라는 월간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여자 기자들이 처음 잡지사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담당하는 화보가 푸드 칼럼이었다. 본 책의 반 정도 되는 사이즈로 뜯어서 냉장고 같은 데 붙여 쓸 수 있는 형태의 기사였는데 기획, 푸드 스타일링, 촬영, 원고 작성을 함께 진행하는 일이었다. 데스크에서 잘했다고 하더라. 그 이후에 <리빙센스>, <우먼센스> 창간호 기자로 일하며 요리 분야 기사를 집중적으로 담당해왔다. 푸드 스타일링은 당시 국내에 ‘푸드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이 명확히 있던 게 아니다 보니 대부분 기자가 진행했고, 자연스럽게 스타일링 영역까지 확장된 거다. 1993년에는 푸드 스타일리스트로 본격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푸드 칼럼 담당 월간지 에디터부터 푸드 스타일리스트, 요리연구가, 셰프까지. 넓게 생각하면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서 움직인 셈이다.

한식을 코스로 구성해 소개하는 만큼 요리에 따라 사용하는 수저도 다른가?

품 서울에서는 기본적으로 은수저를 쓰고 있다. 개인적으로 비교적 큰 그릇을 선호하기 때문에 그에 맞는 그릇과 수저를 내고. 기본 세팅할 때 메인 숟가락 두 개와 젓가락 하나를 준비하고, 후식은 크기가 작은 후식용 숟가락 하나를 따로 올리고 있다.
지난 품 서울 10주년을 기념하며 직접 요리책을 만들어 출판했다. 책 표지에 실제로 유기 숟가락을 붙인 점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메시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품 서울의 10년을 기념하면서 지난 시간과 요리들을 축약해 책으로 만들어보자 싶었다. 계절별로 맛이 든 제철 재료를 선별해 이를 바탕으로 150여 가지 요리를 고르고 엮어 소개했다. 요리에 앞서 계절과 식재료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그런 책이기에 표지에 한식의 상징이자 한국의 아이덴티티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유기 숟가락을 담았다. 모두 새 유기 숟가락이 아닌 실제 사용하던 낡은 유기 숟가락을 모아서 하나씩 직접 붙였다.

숟가락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다.
자신에게 숟가락은 어떤 이미지나 느낌의 도구인가?

숟가락의 형태는 동양과 서양이 다를 뿐 아니라 나라마다 또 다르다. 두루 살펴보면 우리나라 숟가락이 입 안과 밖으로 들락날락하기에 가장 적합한 크기인 것 같다. 술머리가 그리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아서 참 단아하게 느껴진다. 국내외 여행을 다니면서 형태와 느낌이 마음에 드는 숟가락을 사서 모으는 취미가 있는데, 언젠가 일본에서 나무 숟가락을 산 적이 있다. 하나에 만 엔이 넘었던가? 형태가 너무 예뻐서 딱 한 개를 사 왔다. 어떤 숟가락은 당장 사용하지 않더라도 이처럼 모양이 예뻐서 고민 없이 사는 경우도 있고, 용도가 뚜렷하지 않더라도 마음에 들면 사기도 한다. 한 1년 전부터 목공을 배워 숟가락을 깎고 만들고 있는데, 100개 정도 작업하면 숟가락 전시를 해볼 생각이다.

숟가락을 사용해 음식을 먹을 때 더 맛있게 혹은 예의를 갖춰 먹는 방법이 있나?

한식 상차림에 보통 물김치를 기본으로 내는데, 다 이유가 있다. 마른 숟가락은 쉽게 지저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맑고 가벼운 국물이 있을 때에는 국물을 먼저 떠먹거나 물을 한 모금 마셔서 입을 촉촉하게 하면 숟가락을 깨끗하게 사용하며 먹을 수 있다. 마른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먹으면, 밥에 점성이 있기 때문에 한 번에 잘 깨끗하게 먹기 어렵다. 그 숟가락으로 다른 사람과 같이 먹는 음식을 뜨기도 하고, 내 숟가락이 남에게 보이기도 하는 상황에서 눈살을 덜 찌푸리게 할 수 있다. 맛있게 식사 하는 것뿐 아니라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을 배려하고 신경 쓸 수 있는 예의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이런 기본적인 매너도 생각해볼 수 있는 때라고 생각한다. 서양에서도 수프를 뜰 때 스푼을 앞에서 뒤로 뜨는 이유도 내가 먹던 숟가락을 상대방에게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노영희 선생은 푸드 스타일리스트이자 요리연구가로서 음식뿐 아니라 그에 어울리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포함한 상차림 자체가 매우 중요한 포인트일 텐데, 상차림이 음식과 식사 시간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나?

나는 요리보다 푸드 스타일링을 먼저 한 사람이다. 그래서 식사 자리에서 미각뿐 아니라 시각이나 후각처럼 다른 감각들도 중요하게 고려하는 거다. ‘식사’의 의미는 단순히 밥을 배부르게 먹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비즈니스를 원만하게 만들어주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그런 자리에 아름다운 식기나 꽃이 있다면 어떨까? 그 식사 자리에 분위기가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다. 우리가 어떤 신발을 신고 걷는지에 따라 걸음걸이나 태도가 달라지는 것처럼, 상차림도 마찬가지다. 식탁을 어떻게 차리는지에 따라 내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식사를 하는지 달라진다.

예전에 어느 인터뷰에서 장기적 목표로 찻집과 요리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찻집은 올해 초에 한식 카페로 꿈을 이뤘고, 새롭게 바라보는 장기적 목표나 바람이 있다면 무엇인가?

지금 철든부엌 키친 스튜디오에서는 한식 기본 단계부터 고급 요리까지 가르치는 클래스를 2개 정도 진행하고 있다.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4~5시에 끝나고, 한 달에 3번 수업을 한다. 지금 형태로 운영하는 클래스가 내가 꿈꾸는 요리학교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요리학교를 차리게 된다면, 거기는 단지 요리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다방면의 식견과 시각을 두루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곳이기를 바란다. 요리 한 가지를 잘 만들기 위해서는 요리만 잘해서 되는 건 아니다. 식재료 하나라도 깊이 알고, 그와 관련한 인문학적 소양까지 갖추고 있어야 자기만의 요리를 본인이 원하는 그릇에 담아낼 수 있다. 그게 진짜 그릇이든 자신이 생각한 요리에 관한 그림이든. 그 밖에 막연하지만 떠오르는 바람이 두 가지 정도 있다. 하나는 집에서나 철든부엌에서나 늘 강아지 꼬망이와 함께 지내고 있는데, 강아지 음식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거다. 강아지가 입원하면 직접 도시락을 싸다가 먹이기도 한다. 사료와 별개로 사람이 먹는 음식의 간이나 강아지가 먹어서는 안 되는 것들을 배제해서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어린이 음식인데,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 좋은 음식을 잘 먹어야 음식의 맛을 제대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입맛은 길드는 거니까.

인터뷰 전문은 <매거진 툴즈> ‘숟가락’ 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